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스물다섯 스물하나 (청춘 서사, 용두사미, 결말 아쉬움)

드라마 고을 2026. 7. 28. 19:44

목차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끝까지 아름다웠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끝나버렸기 때문일까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잡고 있었습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정말이지 근래 보기 드문 청춘 서사였는데, 마지막 화를 본 뒤엔 그 빛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잘 쌓아 올린 것들이 허물어지는 게 보였거든요.

    찬란했던 청춘 서사, 그 온도가 진짜였던 이유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청춘 로맨스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익숙한 공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요. 그런데 1회를 보자마자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들의 꿈과 관계 자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장치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IMF 외환위기란 1997년 말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시작된 경제 붕괴 사태를 말하는데, 수많은 가정이 하루아침에 해체되는 사회적 트라우마였습니다. 나희도의 펜싱 팀이 해체되는 장면, 백이진의 집안이 무너지는 장면이 그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이른바 '시대적 콜라주'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시대적 콜라주란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극적 흐름 사이사이에 배치해 시청자로 하여금 시대의 감각을 체감하게 만드는 서술 기법입니다. 9.11 테러, 2002 한일 월드컵, 싸이월드 등을 자연스럽게 녹여 넣은 방식은 '응답하라' 시리즈가 즐겨 쓰던 방식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단순한 향수 자극이 아니라 인물의 선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서사적 기능을 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드라마가 단순한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파도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는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점이었습니다.

    배우들의 앙상블 역시 이 드라마가 중반까지 높은 완성도를 유지한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김태리는 나희도라는 인물의 천진난만함과 집요한 열정을 동시에 표현해 냈고, 우주소녀 보나가 연기한 고유림 캐릭터는 드라마 내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남주혁 역시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눈에 띄게 달라진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무엇보다 극 중 태양고 친구들 사이에 흐르는 무조건적인 지지와 연대감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더욱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치열한 스펙 경쟁과 고용 불안 속에서 '순수한 꿈'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요즘,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며 제 학창 시절의 어떤 온도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이 드라마가 남긴 OST 또한 청춘 서사의 감성을 정확하게 받쳐줬습니다. 자우림의 음악이 흐르는 장면이나 2002 월드컵 배경의 시퀀스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의 감정선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초중반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저는 주저 없이 높은 점수를 줬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시기 드라마의 화제성 지수는 상당히 높았고, (출처: 닐슨코리아) 기준으로도 동시간대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 IMF 외환위기라는 시대 배경이 단순 소품이 아닌, 인물의 꿈과 관계를 흔드는 서사 장치로 기능
    • 김태리·보나·남주혁의 앙상블이 드라마 초중반 완성도를 견인
    • 시대적 콜라주(9.11, 월드컵, 싸이월드)가 향수와 서사를 동시에 자극
    • 자우림 등 OST가 감정선을 증폭시키는 서사적 기능 수행
    요약: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초중반은 IMF라는 시대 배경과 배우들의 앙상블, 감각적인 OST가 맞물려 근래 보기 드문 청춘 서사의 완성도를 보여줬습니다.

    용두사미 결말이 남긴 것, 그리고 결말 아쉬움의 정체

    문제는 후반부였습니다. 제 경험상 드라마의 결말이 아쉬울 때, 그 실망감은 단순히 "엔딩이 별로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서 쌓아둔 좋은 장면들까지 함께 흐릿해지는 기묘한 역방향 효과가 생깁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이른바 용두사미식 전개, 그러니까 시작은 강렬하고 풍성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설득력이 약해지는 서사 구조가 아쉬움의 본질이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백이진의 캐릭터 일관성이었습니다. 드라마 내내 그는 나희도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기자로서의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세계 평화'와 '기자 사명감'을 들어 갑자기 뉴욕 특파원을 자원하는 선택은 그 인물에게서 예측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캐릭터 일관성이란 등장인물의 과거 행동과 가치관이 극적 선택의 개연성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서사학적 원칙인데, 쉽게 말해 "이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하는 질문에 드라마가 답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복선이 충분히 깔리지 않은 상태에서 9.11 테러라는 실제 역사적 비극을 두 사람의 관계를 갈라놓는 장치로 쓴 방식은, 극의 흐름 안에서 다소 무겁고 이질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드라마의 서술 구조 자체도 결말의 설득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액자식 구성을 택했는데, 액자식 구성이란 현재 시점의 이야기가 과거 회상 서사를 감싸는 이중 서술 구조를 의미합니다. 중년이 된 나희도와 딸 민채의 현재 이야기가 과거 청춘 서사를 품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채의 아버지가 백이진이 아닌 다른 인물로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은 두 사람의 사랑이 결국 어디로 향한 건지 종잡을 수 없게 됩니다. 제가 직접 마지막 화를 보면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장면은, 남편이 있는 나희도와 백이진이 단독 인터뷰 자리에서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부분이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을뿐더러, 두 사람을 오랫동안 응원해 온 시청자 입장에서 오히려 불편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서사적 설득력 부재는 단순한 연출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입니다. 드라마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현상은 "후반부 서사 붕괴"로 분류되는데, 초반에 높인 시청자의 기대치가 결말의 빈약함을 더 크게 부각하는 효과를 냅니다. (출처: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KOFICE)) 의 한류 콘텐츠 분석 자료에서도, K-드라마의 글로벌 흥행 요소로 '서사 일관성'과 '캐릭터 개연성'이 반복해서 언급됩니다. 이 드라마가 엔딩 전까지 라면 충분히 높은 평점을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라는 점이, 오히려 결말 이후의 아쉬움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 백이진의 특파원 자원 결정이 캐릭터 일관성 부재로 개연성 약화
    • 액자식 구성이 과거 서사와 현재 서사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지 못함
    • 이미 화해 장면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헤어질 수 없었다"는 엔딩이 모순적으로 작용
    • 현재 시점 나희도의 인터뷰 장면이 현실성과 정서적 공감 모두를 놓침
    요약: 캐릭터 일관성 부재와 액자식 구성의 서사적 단절이 맞물리며, 초중반의 완성도가 결말에서 설득력을 잃는 용두사미 구조로 귀결되었습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분명 청춘 드라마로서 오랫동안 기억될 장면들을 남겼습니다. 김태리의 나희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청춘 아이콘이었고, 태양고 친구들이 나눈 연대의 감각은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다만 저는 이 드라마를 다시 보고 싶을 때, 아마도 마지막 몇 화는 건너뛸 것 같습니다. 그게 이 드라마에 대한 저의 솔직한 감상입니다.

    청춘 드라마는 결국 "그 시절의 우리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그 답이 아쉬운 엔딩으로 흐릿해졌다면, 그 드라마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한동안 생각하게 됩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초중반의 청춘 서사만큼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습니다. 단, 결말에 대한 기대치는 조금 낮춰두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_bCI4H_G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