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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가장 깊이 상처받는 일, 한 번쯤 겪어보셨을 겁니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은 그 불편한 진실을 초등학교 교실에서 시작해 마흔 넘은 어른의 마지막 여정까지 따라가며 보여줍니다. 저는 조카들이 게임 컨트롤러를 붙잡고 얼굴 붉히다가 금세 한편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이 드라마가 왜 이렇게 오래 머릿속에 남는지 어렴풋이 이해했습니다.
미움인지 선망인지, 양가감정이라는 감정의 덫
두 사람의 관계는 1992년, 열한 살의 교실에서 시작됩니다. 반장 천상연이 선생님을 대신해 류은중의 손바닥을 때리는 장면, 솔직히 처음엔 단순한 권력관계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전개를 보면 은중이 상연을 '미워하면서도 선망했다'는 설정이 훨씬 핵심에 가깝습니다. 은중에게 상연은 자신이 갖지 못한 유복한 환경, 인기, 그리고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상연의 엄마인 유현숙을 한꺼번에 상징하는 존재였으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감정을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한 대상을 향해 사랑과 미움, 끌림과 거부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제 경험상 이 감정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덜 중요한 사람에게는 그냥 무관심하면 그만이지만, 아끼는 사람에게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과 '저 사람이 밉다'는 마음이 공존하는 이상한 상황이 생기거든요.
상연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중에게 리코더를 건네며 "때려도 된다"라고 허용하는 그 장면, 겉으로는 화해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보다 네가 더 깊은 사람임을 인정한다'는 패배 선언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감정을 품은 채 수십 년을 함께 걷습니다. 이 설정이 저에게는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솔직하게 느껴진 부분이었습니다.
- 양가감정(ambivalence): 동일 대상에 대해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 상태
- 은중은 상연을 미워하면서도 그녀가 가진 환경과 관계를 선망하는 복합 감정을 품음
- 상연 역시 은중의 깊은 이해심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패배감을 느끼는 구조
조력사망이라는 선택 앞에서 우정은 무엇인가
드라마의 현재 시점은 42살 천상연이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을 택하겠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조력사망(assisted dying)이란 불치 또는 말기 질환자가 의료진이나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입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 같은 기관을 통한 조력사망은 국제적으로도 논의가 활발한 주제로,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존엄사의 경계를 어디에 그을 것인가를 두고 여전히 의견이 엇갈립니다(출처: WHO 완화의료 팩트시트).
10년 전 절교한 상연이 자신의 영화를 훔쳐 성공한 장본인인데, 그 사람이 마지막 여정에 함께해 달라고 찾아오는 상황. 은중의 당혹감은 당연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잠깐 멈췄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생의 끝에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러 온다는 설정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이런 전개가 지나치게 드라마틱한 화해 도구로 소비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상연은 용서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자신이 무너질 때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은중밖에 없다는 걸 아는 것이라고요.
결국 은중은 동행을 결심합니다. 이 결정이 쉽지 않은 이유는, 상연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남겨진 사람에게 엄청난 심리적 무게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임상심리 연구에 따르면 조력사망에 동행한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은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반응(PTSD)을 경험하는 비율이 일반 사별자보다 유의미하게 높습니다(출처: The Lancet). 드라마가 그 무게를 끝까지 다루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적어도 이 선택이 얼마나 무거운지는 제대로 담아냅니다.
오해와 단절을 반복한 관계, 우정의 끈기는 어디서 오는가
두 사람은 중학생 시절 깊은 우정을 쌓다가, 천상학의 죽음으로 첫 번째 균열을 맞습니다. 대학에서 재회한 후에는 상학의 성 정체성 문제와 일기장 비밀을 둘러싼 배신감으로 두 번째 이별을 겪고, 이후에는 영화 기획 탈취라는 결정적인 상처까지 더해집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계속 끊어질 이유를 쌓아왔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의 인간관계는 어떤가요. 갈등이 생기면 메신저 차단 버튼 하나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이견이 충돌할 때, 소통을 끊고 싶은 충동을 누른 적이 꽤 있습니다. 불편함을 피하는 쪽이 훨씬 쉬우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잘라낸 관계는 나중에 깊이가 없습니다. 결국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을 버텨낸 관계만이 단단해진다는 걸,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실감했습니다.
다만 드라마의 후반부 전개는 솔직히 조금 아쉬웠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갈등이 '말기 암'이라는 외부 충격을 계기로 비교적 빠르게 해소되는 흐름이, 두 사람이 스스로 상처를 마주하고 풀어가기보다는 상황에 의해 봉합되는 느낌을 주거든요. 수십 년의 심리전이 눈물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마무리되면서, 초중반까지 이어온 예리한 시선이 조금 무뎌진다는 인상도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장르 문법상 전형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더 능동적으로 화해를 이끌어가는 장면이 있었으면 훨씬 강렬했을 것 같습니다.
-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상 오랜 관계일수록 갈등 후 회복 탄력성이 더 크게 작용함
- 두 사람은 오해와 단절을 반복하면서도 결국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이탈하지 못하는 구조를 반복
- 후반부는 외부 상황에 의한 화해라는 점에서 서사적 능동성이 약해지는 한계가 있음
각본으로 완성되는 마지막, 서사 치료라는 방식
드라마의 결말은 꽤 인상적입니다. 은중은 상연을 떠나보낸 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각본으로 써내려갑니다. 드라마 작가인 은중이 자신과 상연의 관계를 작품으로 남긴다는 설정은, 서사 치료(narrative therapy)의 개념과 닿아 있습니다. 서사 치료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재구성하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파악하고 심리적 회복을 이루는 치료적 접근법입니다. 슬픔이나 상실을 글이나 이야기로 풀어내는 행위가 실제로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글로 꺼내는 순간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됩니다. 은중이 각본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상연을 자신의 삶 속에 살아있는 형태로 붙잡아두는 방식인 셈입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죽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이 결말에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주변 인물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만 소비된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천상학이나 김상학 같은 인물들은 나름의 서사를 가질 수 있었는데, 주연들의 감정선을 돕는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풍성했다면 극 전체의 입체감이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드라마인 만큼, 특정 시점의 에피소드를 깊이 있게 파는 구간이 있었다면 몰입도 측면에서도 훨씬 효과적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 서사 치료(narrative therapy):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재구성해 심리적 회복을 도모하는 심리치료 접근법
- 은중이 각본을 쓰는 행위는 상실을 언어로 붙잡아두는 치료적 의미를 내포
- 주변 인물 서사의 빈약함은 극의 입체감을 제한하는 구조적 아쉬움으로 남음
'은중과 상연'을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단순하지 않거든요. 가장 오래된 상처를 준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용서라는 단어만으로는 다 설명이 안 됩니다. 관계의 끈기, 불편한 감정을 피하지 않는 용기, 그리고 상대의 존재를 이야기로 남기는 방식. 이 드라마가 건네는 것들은 쉽게 맺고 끊는 요즘의 관계 방식에 조용히 반문을 던집니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오래된 관계가 내 삶에 있다면, 이 드라마를 한 번쯤 같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말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꺼낼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