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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새로이는 3년의 수감 생활 중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처음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는데, 다 보고 나서는 오히려 그게 이 드라마의 유일한 리얼리티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합리한 권력 앞에 소신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동시에 얼마나 강력한 일인지 — 이태원 클라쓰는 그 질문 하나로 꽤 오래 머릿속에 남는 드라마입니다.
소신이라는 무기, 박새로이의 선택
일반적으로 복수극은 주인공이 점점 어두워지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박새로이는 달랐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출소 후에도 아버지가 남긴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았고, 그것이 오히려 가장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습니다. 장가 그룹이라는 거대 권력 앞에 맨몸으로 서 있는 장면들이 유독 설득력 있게 느껴진 건, 그가 분노를 쌓는 대신 원칙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장 회장이 아들 장근원의 뺑소니 사건을 덮기 위해 동원한 건 권력과 조작된 증거였습니다. 새로이의 아버지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고, 새로이는 복수를 시도하다 폭행죄로 3년을 복역합니다. 보통이라면 여기서 무너지거나 타협의 유혹에 흔들릴 텐데, 그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면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 주인공의 뚝심이 이렇게까지 일관성 있게 유지될 줄은 몰랐습니다.
출소 후 그가 선택한 건 이태원의 작은 포차, 단밤이었습니다. 직접 창업(entrepreneurship)의 방식으로 장가를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이었는데, 여기서 창업이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거대 기업과 정면으로 경쟁하기 위한 선전포고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감정적 복수 대신 비즈니스로 싸우겠다는 그 설정이, 이 드라마가 단순한 막장극과 달랐던 첫 번째 이유입니다.
다양성이 조직의 힘이 되는 과정
다양성(diversity)이 조직 경쟁력과 연결된다는 말은 요즘 경영학 강의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다양성이란 성별, 출신, 배경이 다른 구성원들이 각자의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뜻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개념이 실제 이야기 안에서 설득력 있게 구현된 경우를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그걸 꽤 잘 해냈습니다.
단밤에는 전과자, 트랜스젠더, 혼혈인 등 주류 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입니다. 특히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요리사 마현이를 새로이가 해고 대신 두 배의 월급을 주며 붙잡는 장면은, 단순한 온정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조직 구성원이 자신이 일하는 곳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을 때, 그 신뢰가 결국 고객에게도 전달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건 인재 유지(retention) 전략, 즉 핵심 인재가 조직을 이탈하지 않도록 신뢰와 처우로 붙잡는 방식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이큐 160의 인플루언서이자 소시오패스 성향을 가진 조이서가 단밤에 합류하는 과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녀가 새로이의 우직한 태도에 이끌린 건, 전략가가 감당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그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조합은 효과적이었습니다 — 이서는 인테리어, 동선, 메뉴를 뜯어고치며 단밤을 실력으로 승부하는 가게로 바꿔놓습니다.
- 트랜스젠더 요리사 마현이: 해고 대신 두 배 월급으로 신뢰에 투자
- 전과자, 혼혈인 직원: 배경이 아닌 실력과 태도로 평가
- 조이서: 냉정한 전략과 새로이의 원칙이 만나 시너지를 만듦
- 결과: 단밤은 소외된 개인들이 모여 업계 1위를 목표로 성장
실제로 출처: McKinsey & Company의 연구에 따르면, 다양성이 높은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재무 성과가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태원 클라쓰가 드라마적 감동 이상으로 설득력 있게 느껴졌던 건, 이 지점이 현실 데이터와도 어느 정도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전략으로 읽는 장가와의 대결
이태원 클라쓰가 단순한 복수극과 다르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전반부의 대결 구도가 꽤 현실적인 비즈니스 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새로이는 과거 장가에 투자했던 보험금과 펀드를 활용해 장가의 주식을 매입하고, 내분을 유도해 경영권을 압박하는 전략을 씁니다. 이는 적대적 인수합병(M&A), 즉 특정 기업의 주식을 시장에서 대량 매입해 경영권 자체를 위협하는 방식과 유사한 구조입니다.
민정 이사와 손을 잡는 장면도 현실감이 있었습니다. 내부 협력자를 확보해 조직의 균열을 만드는 방식은, 외부에서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인 접근입니다. 제가 직접 이 흐름을 따라가면서, 전반부만큼은 '이 드라마 꽤 치밀하게 짰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이 치밀함이 후반부로 갈수록 무뎌집니다. 요식업계 정점에 오르는 성장 과정이 어느 순간 시간 도약으로 생략되고, 갈등 해소 방식이 납치나 교통사고 같은 자극적 장치에 기대는 경향이 커졌습니다. 일반적으로 후반부 갈등이 더 정교해야 몰입이 유지된다고 알려져 있는데, 제 경험상 이 드라마는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초반의 밀도가 후반을 앞서는, 다소 아쉬운 역주행이었습니다.
장대희 회장과 장근원이라는 악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형적인 평면 악역으로만 그려지면서, 새로이와의 긴장감이 후반부로 갈수록 희석되었습니다. 입체적인 적이 있어야 주인공도 더 강하게 빛나는 법인데, 그 부분이 끝까지 아쉬웠습니다.
무인화 시대에 '사람 장사'가 남기는 것
2026년 현재, 요식업계에서 키오스크와 AI 서빙 로봇, 자동화 조리 시스템은 선택이 아닌 기본값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비용 효율화(cost efficiency), 즉 인건비와 운영비를 줄여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흐름이 업계 전반을 덮고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장사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단밤포차의 철학은 꽤 낯선 주장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실제로 다시 찾게 되는 가게는 대부분 '사람 기억'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메뉴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 공간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가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밤이 직원들에게 신뢰와 대우를 먼저 투자한 이유가, 결국 그 신뢰가 손님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드라마의 논리는 — 효율보다 관계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지금 시대에 더 뚜렷하게 읽힙니다.
실제로 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음식점업 폐업률은 매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무인화로 인한 비용 절감보다 고객 경험의 질이 장기 생존에 더 결정적인 요소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단밤의 철학이 드라마 안에서만 유효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입니다.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선택된 것도 의미 있게 읽힙니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이 거리는, 단밤이 지향하는 포용의 철학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공간으로서의 이태원은, 드라마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배경 자체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태원 클라쓰는 완벽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후반부의 서사 밀도 저하와 평면적 악역은 분명한 아쉬움입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초반에 단단하게 쌓아 올린 박새로이의 소신과 단밤이라는 공간이 품은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입니다. 복수보다 원칙이, 효율보다 신뢰가 더 오래간다는 걸 — 이 드라마는 완벽하진 않지만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전반부만큼은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이나 일터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되실 겁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