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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 (계급 공간, 교육 욕망, 서사 완성도)

드라마 고을 2026. 7. 2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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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드라마를 그냥 자극적인 막장물로만 봤습니다. 그런데 몇 회를 넘기자 손에서 리모컨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더군요. '펜트하우스'는 초고층 주상복합 헤라팰리스를 배경으로 돈과 계급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계를 그려냅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드라마 속 욕망의 풍경이 2026년 우리 사회의 단면과 묘하게 겹쳐 보여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계급 공간 헤라팰리스, 우리 사회의 자화상

    극 중 헤라팰리스는 도시 사회학에서 말하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의 전형입니다. 여기서 게이티드 커뮤니티란 물리적 장벽과 보안 시스템으로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폐쇄형 주거 공간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부유층이 모여 사는 동네가 아니라, 내부 구성원끼리만 통용되는 위계와 규칙이 작동하는 하나의 독립된 사회 단위입니다. 드라마는 이 공간을 100층 펜트하우스의 주인 주단태와 청아재단 이사장 자리를 둘러싼 천서진의 권력 다툼으로 가득 채웁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가장 섬뜩했던 건 과장의 정도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구조였습니다. 아파트 브랜드와 거주지가 개인의 신분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 지 오래라는 사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 고가 아파트 단지의 가격 격차는 같은 자치구 내에서도 수억 원 이상 벌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출처: 한국부동산원). 헤라팰리스가 텔레비전 속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천서진이라는 인물을 분석하면 이 계급 구조가 더 선명해집니다. 그녀는 과거 동급생의 재능을 짓밟고 대상 트로피 '영광의 벨칸토'를 차지한 가짜 1등입니다. 아버지의 배경을 등에 업고 재단 이사장 자리까지 올랐지만, 평생 숙적 오윤희를 향한 열등감은 끝내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열등감이 딸 은별에게까지 투영되는 장면에서는, 보는 제가 오히려 더 불편해졌습니다. 자기 상처를 자식에게 전이시키는 방식이 드라마 속 과장된 악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입니다.

    드라마는 계급화된 공간 안에서 작동하는 배제와 포함의 논리를 꽤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신분을 속이고 수학 선생님으로 들어온 민설아(안나)가 헤라팰리스 사람들에게 받는 모욕은, 계층 간 인정 투쟁이라는 사회학적 개념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인정 투쟁이란 특정 집단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으로부터 확인받으려 하는 심리적·사회적 충돌을 뜻하는데, 헤라팰리스 사람들이 외부인을 대하는 방식이 그 교과서적 사례처럼 보였습니다.

    • 헤라팰리스는 부동산 자본과 인맥이 결합한 폐쇄적 계급 공간으로, 한국 사회의 주거 격차 구조를 극단적으로 형상화한 무대입니다.
    • 천서진의 열등감과 권력 욕망은 단순한 악인 서사가 아니라, 계급 상승 욕구와 자녀 대리 만족이라는 현실적 심리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 민설아의 비극은 계층 간 인정 투쟁이 실패했을 때 가장 약한 고리가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요약: 헤라팰리스는 단순한 드라마 배경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계급 공간과 주거 욕망을 압축한 거울이며, 그 안의 인물들은 현실에서 낯설지 않은 욕망의 화신들입니다.

    교육 욕망의 민낯, 그리고 서사 완성도의 한계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화려한 복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들이 자식의 입시를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는 장면들이었습니다. 청아예술제 대상을 둘러싼 물밑 경쟁, 반주자를 매수하는 하윤철의 행동, 딸을 위해 온갖 범죄에 공모하는 천서진.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고 넘기기엔, 실제 사교육 카르텔 문제가 너무 선명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초·중·고 사교육 참여율은 78.5%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월평균 사교육비도 꾸준히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이 수치 앞에서 드라마 속 부모들의 집착이 마냥 허황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저만의 감상이 아닐 겁니다. 아이의 출발선이 부모의 정보력과 재력으로 결정되는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는 드라마보다 더 냉혹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드라마는 현실에 대한 불편함을 건드릴 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펜트하우스'는 초반 그 역할을 꽤 잘 해냈습니다. 사교육 카르텔이란 특정 학원·강사·입시 정보가 유착해 일부 계층만 유리한 방향으로 입시판을 움직이는 구조적 담합을 뜻하는데, 드라마는 이를 예술 교육이라는 틀 안에 녹여 꽤 날카롭게 시각화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후반부에서 그 날카로움은 상당 부분 무뎌졌습니다. 죽었던 인물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전개가 반복되면서, 처음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서사의 긴장이 풀려버렸습니다. 심수련이 나애교로 위장해 돌아오고, 로나가 살아있었다는 반전까지는 이해하더라도, 그 연속이 쌓이자 시청자 입장에서 감정이입보다 피로감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제가 직접 끝까지 봐봤는데, 마지막화를 마친 뒤의 느낌은 카타르시스보다는 허탈함에 가까웠습니다.

    서사 완성도 측면에서 가장 아쉬운 지점은 인물의 서사적 자율성이 사라진 부분입니다. 서사적 자율성이란 인물이 자신의 내면 논리와 동기에 의해 행동하고 변화하는 서사 구조상의 독립성을 의미합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은 이 자율성을 잃고 반전을 위한 장치로만 기능하는 느낌이 강해졌습니다. 상류층의 위선을 해부하겠다는 초반 기획 의도가 점점 희미해지고, 자극 그 자체가 목적이 된 듯한 후반부는 결국 깊은 여운을 기대한 시청자에게 빈자리를 남겼습니다.

    • 역대 최고 사교육 참여율이 보여주듯, 드라마 속 교육 집착은 허구가 아닌 현실의 과장된 반영입니다.
    • 초반 계급 비판의 날카로움은 인상적이었으나, 반전 남발로 인해 서사적 자율성이 무너진 후반부는 완성도를 크게 훼손했습니다.
    • 자극과 시청률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 더 오래 기억될 수 있었던 작품이 화제작에 머무는 아쉬운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요약: 교육 욕망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은 이 드라마의 가장 강한 무기였지만, 자극 중심의 후반 전개가 서사 완성도를 갉아먹으며 그 힘을 스스로 약화시켰습니다.

    '펜트하우스'가 남긴 가장 솔직한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헤라팰리스를 욕망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정해진 꼭대기를 향해 무작정 달리는 대신, 아이들이 남과 비교당하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자아를 찾아갈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 진짜 어른의 몫일 거라고, 이 드라마를 보며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촘촘한 결말이었다면 단순한 화제작을 넘어섰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지만, 그 불편한 질문만큼은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8MEXGY_zs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