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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아이들이 게임하는 소리를 들으며 DP 시즌1을 다 보고 났을 때,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탈영병 추적극이라는 외피 안에 이렇게 서늘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폭력이 일상이 된 폐쇄 공간에서 평범한 청춘들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그 과정을 카메라는 냉정하리만큼 가까이서 보여줍니다.
병영이라는 폐쇄 공간, 그리고 체념의 문화
제가 처음 이 드라마를 틀었을 때는 그냥 버디물이겠거니 했습니다. 안준호가 103사단 헌병대에 발령받아 D.P. — 군무 이탈 체포조, 쉽게 말해 탈영병을 찾아 데려오는 임무를 맡은 헌병 — 로 활동하게 된다는 설정이 그랬습니다. 여기서 D.P. 란 'Deserter Pursuit'의 약자로, 부대를 무단으로 이탈한 병사를 추적해 원대 복귀시키는 특수 임무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추적극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순박한 청년 조석봉이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제 경험상 이런 구조가 낯설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건 황장수 같은 악질 가해자가 아니라, "원래 다 그런 것"이라고 말하며 눈을 감아버리는 주변의 평범한 병사들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라고 부릅니다. 방관자 효과란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상을 말하는데, 폐쇄된 집단일수록 이 효과는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드라마는 이 메커니즘을 안준호의 눈빛 하나로 보여줍니다. 석봉을 향한 폭행을 방관했던 자신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무력감. 저도 그 눈빛 앞에서 한동안 화면을 끄지 못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영 내 인권침해 신고 건수는 201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출처: 국가인권위원회), 신고되지 않는 묵인과 방관의 문화는 수치로 잡히지 않습니다.
- D.P.(군무 이탈 체포조): 탈영병 추적·복귀가 주 임무인 헌병 특수 임무조
-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목격자가 많을수록 개입 책임감이 분산되는 심리 현상
- 폐쇄 집단의 동조 압력: 이탈자가 오히려 표적이 되는 구조가 침묵을 강화
조석봉이 무너지는 과정 — 시스템이 만든 괴물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숨이 막혔던 건 조석봉의 변화였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되는 이 과정을 사회학에서는 폭력의 재생산(Reproduction of Violence)이라고 부릅니다. 폭력의 재생산이란 피해를 당한 개인이 그 폭력을 내면화하고, 결국 또 다른 폭력의 주체가 되는 악순환 구조를 말합니다. 석봉의 절친 김루리 일병이 총기 난사라는 극단적 행동으로 치닫는 결말은 이 구조의 끝을 보여주는 셈입니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서은 중령이 이끄는 군 특별수사단이 김루리를 유인하려는 장면은 개인을 '처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관료적 시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준호와 호열이 사살 명령 직전에 생중계를 택한 것은, 시스템이 감추려는 것을 공론화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선택이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 두 번째로 볼 때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안준호와 한호열의 콤비 플레이가 때로는 버디 무비(Buddy Movie) 공식 — 성격이 정반대인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해결하는 장르 문법 — 을 너무 충실히 따른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재치 있는 입담과 액션이 이어지는 순간, 병영 부조리가 주는 무게감이 묘하게 장르적 재미로 희석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건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인데, 탈영병들의 이야기가 가진 참담함과 두 사람의 경쾌한 케미가 한 화면에 공존할 때 어느 쪽에도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순간이 생겼습니다.
더 아쉬운 점은 부대 내 간부들을 그리는 방식입니다. 진급과 보신주의에만 매몰된 평면적 악역으로 처리되다 보니, 폭력을 방조하는 시스템의 복잡한 층위가 단순화된 인상을 줬습니다. 그들 역시 망가진 체제 안에 놓인 존재라는 시선이 더해졌다면 비판의 깊이가 살아났을 것 같습니다.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비열함으로만 설명한 듯한 선택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26년, 폭력은 형태만 바꿨을 뿐입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거실로 나왔더니 아이들이 여전히 게임을 하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 웃음이 반가우면서도 불쑥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몇 년 뒤면 저 아이들도 어떤 형태로든 폐쇄적인 집단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2026년 지금, 물리적 폭력은 예전보다 줄었을지 몰라도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 — 메신저나 SNS를 통해 이루어지는 디지털 따돌림과 괴롭힘 — 은 오히려 더 은밀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사이버 폭력 피해 경험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피해자가 주변에 말하지 못하는 비율이 오프라인 폭력보다 높습니다. 폭력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만 바뀐 것입니다.
DP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이겁니다.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가. 제가 직접 이 드라마를 보고 느낀 건, 그 고리의 가장 약한 연결 고리는 방관자라는 점입니다. 악질적인 가해자를 없애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몰랐어"라는 말을 쉽게 뱉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다수 속에 숨지 않고, 보이지 않는 상처까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돕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DP 시즌1은 그 숙제를 꽤 무겁게, 그러나 외면하기 어렵게 건네는 드라마입니다.
DP 시즌1이 남긴 안준호의 눈빛은,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오래 머물렀습니다. 완벽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 불편함이 이미 이 드라마가 해야 할 말을 다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넷플릭스에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면 한동안 조용히 앉아 있게 될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