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됩니다. 해외 지사 담당자로 빈틈없이 굴러가던 직장인이 아이들 앞에서 한없이 무장해제되는 아빠로 바뀌는 그 찰나가, 드라마 '미지의 서울'을 보면서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쌍둥이 자매가 서로의 일상을 통째로 맞바꾸며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이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울림을 건넵니다.정체성 교환이 건드린 것, 번아웃의 민낯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가볍게 볼 요량으로 틀었는데, 1회가 끝날 때쯤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불편해졌습니다. 서울에서 에이스 변호사로 살아가는 유미래가 번아웃(burnout) 직전에 몰린 장면이 너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번아웃이란 극도의 직업적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감정적·..
만원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싶었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 순간이 꽤 오래 쌓인 다음에야 드라마 한 편을 통해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그렇게 무뎌진 일상 속 감각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특별한 사건도, 화려한 반전도 없는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먹먹해집니다.출퇴근 번아웃, 길 위에서 에너지가 다 타버린다경기도 산포시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하는 삼 남매의 이야기로 드라마는 시작됩니다. 창이는 "경기도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자차밖에 없다"라고 말하고, 미정은 경기도를 계란 흰자에 비유합니다. 서울이라는 노른자에서 멀리 떨어진 흰자, 존재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공간이라는 표현이 꽤 날카롭게 와닿았습니다.일반적으로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