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제가 이렇게 빠져들 줄 몰랐습니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검사가 주인공이라니, 감정 이입이 될까 반신반의했는데 오히려 그 건조함이 이 드라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검찰 내부 비리와 연쇄 살인이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드라마와 현실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조직 안에서 원칙을 지킨다는 게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지, 이 드라마는 그걸 아주 정확하게 짚어냅니다.감정 없는 검사가 오히려 더 무서운 이유, 이 몰입감의 정체는?황시목이라는 캐릭터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 사람이 주인공 맞나?' 싶었습니다. 뇌수술로 감정 회로 일부를 절제한 검사라는 설정이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드라마를 보면 이 설정이 얼마나 정교..
거실에서 아이들이 게임하는 소리를 들으며 DP 시즌1을 다 보고 났을 때,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탈영병 추적극이라는 외피 안에 이렇게 서늘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습니다. 폭력이 일상이 된 폐쇄 공간에서 평범한 청춘들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 그 과정을 카메라는 냉정하리만큼 가까이서 보여줍니다.병영이라는 폐쇄 공간, 그리고 체념의 문화제가 처음 이 드라마를 틀었을 때는 그냥 버디물이겠거니 했습니다. 안준호가 103사단 헌병대에 발령받아 D.P. — 군무 이탈 체포조, 쉽게 말해 탈영병을 찾아 데려오는 임무를 맡은 헌병 — 로 활동하게 된다는 설정이 그랬습니다. 여기서 D.P. 란 'Deserter Pursuit'의 약자로, 부대를 무단으로 이탈한 병사를 추적해 원대 복귀시..
전국 소년부 판사 20여 명이 매년 3만 명 이상의 소년범을 담당한다는 사실, 처음 접했을 때 숫자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소년심판'을 보고 나서야 그 숫자 뒤에 얼마나 많은 균열이 숨어 있는지 느꼈습니다.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라는 첫 대사가 역설적으로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었습니다.촉법소년 제도, 법의 방패인가 허점인가드라마가 시작되자마자 저를 붙들어 세운 건 살인 장면의 잔혹함이 아니라, 범인이 "만 14세 미만은 사람을 죽여도 감옥에 안 간다"는 말을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이었습니다. 제도의 허점을 학습하고 이용한 아이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훨씬 더 섬뜩했습니다.촉법소년(觸法少年)이란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형사 책임 능력이 없다고 보아 형사 처벌 대신 소..
로맨스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제목도 포스터도 그렇게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1화를 틀고 나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대 제주를 배경으로 반항아 애순과 우직한 관식의 일생을 따라가는 16부작 드라마입니다. 제주 방언으로 '수고하셨습니다'를 뜻하는 이 제목이, 다 보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에 내려앉았습니다.1950년대 제주라는 배경, 이게 왜 지금인가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시대극(時代劇), 즉 특정 역사적 시기를 무대로 삼아 당대의 생활상과 정서를 재현하는 장르는 진입 장벽이 높다는 편견이 있습니다. 배경을 이해해야 인물이 보이고, 인물이 보여야 감정이 움직이니까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달랐습니다. 역사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냥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보여줬습니다.작품 ..
군대에서 가장 아래 계급이 부대 전체를 바꿀 수 있을까요. 처음엔 그 설정이 너무 순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억압적인 공간에서 밥 한 끼가 사람을 움직이는 이야기, 드라마 은 그 가능성을 생각보다 훨씬 진지하게 밀고 나갑니다.서사 완성도: 비리 고발극과 성장담의 교차점군 복지와 보급 비리를 드라마의 핵심 갈등으로 가져온다는 건, 꽤 날 선 선택이거든요. 대대장의 보급 비리가 서서히 밝혀지는 구조는 전형적인 내부고발 서사(whistleblowing narrative), 즉 조직 내부의 부정을 당사자가 직접 폭로하며 정의를 회복해 가는 이야기 틀을 따릅니다. 여기서 내부고발 서사란 개인이 거대한 조직 권력에 맞서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를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