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 보고서를 마감하고 퇴근길 지하철에 몸을 실었을 때, 문득 이 드라마가 생각났습니다. 화면 속 박동훈도 똑같이 버스 손잡이를 붙잡고 서 있었거든요. 피곤하지만 쓰러지지 않는 그 자세로. 나의 아저씨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질 작품입니다. 외부의 음모와 내면의 균열 사이에서 버텨내는 어른의 이야기를, 저도 꽤 오래 곱씹었습니다.내력과 외력 — 건축구조기술사가 던지는 삶의 은유박동훈의 직업은 건축구조기술사입니다. 건축구조기술사란 건물이 바람, 지진 같은 외부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구조 안전성을 설계하고 검토하는 전문 자격을 가진 엔지니어를 말합니다. 드라마는 이 직업을 단순한 설정으로 두지 않습니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라는 대..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 자극적인 범죄 재현에 기댄 흔한 수사물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연쇄 범죄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범죄의 잔혹함을 전시하는 방식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고 알려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심연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그 과정에서 프로파일링이라는 낯선 학문이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줬습니다.프로파일링,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일반적으로 프로파일링(Criminal Profiling)은 드라마 속에서 천재 수사관이 현장을 한 번 훑고 범인을 뚝딱 지목하는 화려한 기술처럼 묘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프로파일링이란 범죄 현장에 남겨진 행..
영혼을 바꾸는 금지된 술법 '환혼술'이 20년의 간격을 두고 두 세대의 운명을 완전히 뒤흔든다는 설정,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시즌1을 끝까지 보고 나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뻔할 것 같았던 무협 판타지가 생각보다 훨씬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거든요. 이 글은 환혼 시즌1의 세계관과 인물 서사를 짚어보고, 제가 느꼈던 아쉬움까지 솔직하게 담은 리뷰입니다.환혼술이 만들어낸 사제 관계, 그 독창성이 드라마의 출발점은 '환혼술(換魂術)'입니다. 여기서 환혼술이란 살아있는 두 존재의 영혼을 강제로 맞바꾸거나, 혼이 빠져나간 육체에 다른 영혼을 이식하는 금지된 사술을 말합니다. 단순히 "몸이 바뀌었다"는 설정에서 끝나지 않고, 드라마는 이 술법을 둘러싼 죄와 대가, 그리고 순리를 ..
첫사랑이 아름다운 건 끝까지 아름다웠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끝나버렸기 때문일까요.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잡고 있었습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정말이지 근래 보기 드문 청춘 서사였는데, 마지막 화를 본 뒤엔 그 빛이 오히려 더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잘 쌓아 올린 것들이 허물어지는 게 보였거든요.찬란했던 청춘 서사, 그 온도가 진짜였던 이유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청춘 로맨스 드라마라는 장르 자체가 워낙 익숙한 공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서요. 그런데 1회를 보자마자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인물들의 꿈과 관계 자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장치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IMF 외환위기란..
뉴스에서 솜방망이 판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경험, 저만 하는 건 아닐 겁니다. 드라마 '모범택시'를 처음 틀었을 때 제가 느낀 건 단순한 오락적 쾌감이 아니었습니다. 법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우리가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대신 소리 내주는 느낌이었습니다.복수 대행 조직 무지개 운수의 활약이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지, 그리고 그 쾌감 뒤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질문이 무엇인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사적 복수가 드라마가 된 배경: 공권력의 공백드라마는 아동 성범죄자가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입국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오히려 공포스러운 눈빛으로 맞서는 그 얼굴. 제가 그 장면을 보면서 든 생각은 "저게 픽션이 아니다"였습니다. 실제로..
처음에 저는 이 드라마를 '로맨스물'로만 봤는데 아니었습니다. 미혼모라는 이유 하나로 마을 전체의 시선에 짓눌려 살던 동백이가, 단 한 사람의 믿음을 발판 삼아 자기 삶을 다시 세워나가는 이야기였거든요. 그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현실의 어딘가를 찌르고 있었습니다.옹산이라는 무대, 그리고 동백이가 짊어진 편견일반적으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정겹고 넉넉한 공동체를 그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얘기가 좀 다릅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면은 따뜻하지만, 그 안에는 미혼모이자 술집 주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동백을 향해 고정된 시선이 팽팽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여기에 연쇄살인마 '까불이'라는 존재가 겹칩니다. 6년 전 옹산에 공포를 심어놓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