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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번에 출장 좀 다녀올게."
가족에게는 그렇게 말하고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사실 출장을 가장한 친구와 둘이 떠나는 1박 2일 여행이었습니다. 며칠전 친구와의 만남에서 즉흥적으로 결정한 비밀 여행이었습니다. 친구와 둘이 해외여행이라니. 가족여행과는 다르게 해방감이 있었습니다. 짧은 일정이니 후쿠오카에 가면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쉬울 틈 없이 꽉 채워 돌아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때의 여행을 떠올려보면 기억에 남는 건 쇼핑도, 맛집도 아니었다. 예상치 않았던 사건과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해방와 같은 그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친구와 함께 후쿠오카 즉흥 여행
친구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은 가족과 함께 갈 때와는 다르게 출발부터 느낌이 달랐습니다. 아이들 챙길 것도 없고, 어디 갈지 서로 의견을 맞추느라 시간을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우리 일단 그냥 가자." 정말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습니다.
후쿠오카 1박 2일이면 보통 맛집 탐방에 다이소, 돈키호테 등 쇼핑을 한가득 한 다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는 짧고 알찬 여행을 떠올리게 됩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친구와 함께 움직여보니 우리가 원했던 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둘이 만났으니 이것저것 이야기하고 싶었고, 평소에는 가족 일정에 맞추느라 하지 못했던 여유도 조금 부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첫날은 생각보다 정신없이 흘러갔습니다. 평소에 눈여겨 봤던 일본 인기 아이템들,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 용품 등.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미리 준비한 쇼핑리스트 품목을 구매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웨이팅이 길었던 맛집까지 다니다보니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분명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며 매번 아쉽게 헤어져야 하는 친구와 실컷 이야기 나누려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정작 둘이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정작 일본에 와서도 한국에서와 똑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해야할 일들을 하느라 여유를 즐기지 못했다는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려고 온 여행이 아니었는데.."
"우리 내일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우리의 시간을 보내자"
캐리어 분실 사건, "왠일이야!! 여기 있었어?"
이 여행에는 쇼핑보다 훨씬 강렬한 사건도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캐리어였죠.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버스에서 내리고 한참을 이동한 뒤에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캐리어 두 개를 버스짐칸에 그대로 두고 내린 것입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어떡하지?"
이미 버스에서 내린 지 30분도 훌쩍 지난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버스정거장으로 뛰었습니다. "버스가 아직 있을까?" "벌써 떠나버렸으면 어떻하지? 이따 밤에나 찾을 수 있는걸까?" 뛰는 순간에도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습니다. 우리가 내렸던 3층 버스 플랫폼에 가보니 역시 버스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사정을 이야기 해보려 사무실인듯한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미 한참 시간이 지났으니 캐리어가 그대로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더듬더듬 "We lost our carriers..." 라고 말했는데,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직원 한 분이 벌떡 일어나더니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습니다. 그곳에는 우리 캐리어 두 개가 떡하니 놓여 있었습니다.
"왠일이야!! 여기 있었어!"
그 순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알고 보니 버스기사가 우리가 내린 뒤에도 한참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끝내 우리가 돌아오지 않자 캐리어를 사무소에 맡기고 운행을 이어간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줄 알고 식은땀을 흘리다가 눈앞에서 다시 캐리어를 만나는 순간의 그 안도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우리는 연신 '아리가또' 를 연발하며 캐리어를 가지고 다시 시내로 나왔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수 있었습니다. 캐리어를 다시 찾았다는 안도감과 친절한 사람들에 대한 흐뭇함으로 캐리어를 잃어버렸을상시의 당혹감은 까맣게 잊고 처음 도착했던 그때보다 기분이 더 좋아져있었습니다.
"드디어 우리만의 여행 시작이다!!"
친구가 후쿠오카에서 원했던 건 쇼핑이 아니었다
"여기 가자." "이것도 사야지." "저기도 유명하다는데?"
짧은 여행이라는 생각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후쿠오카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1박 2일인 만큼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어 호텔에 돌아온 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가 이번 여행에서 원했던 건 쇼핑으로 가득 찬 일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둘이 만나서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 일이죠.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비행기까지 타고 왔는데 정작 만나자마자 우리는 쇼핑하느라 바빴던 것입니다. 물론 쇼핑도 재미있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지만 돌아다니고 물건사고 기다리고 먹고 하는 중간에도 우리는 별다른 대화없이 바쁘게 움직이기만 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날은 제대로된 힐링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죠.
"우리 어디 가지?"
그러다 우리가 향한 곳은 '오호리 공원'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그토록 원했던 힐링의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오호리 공원에서 5시간, 진정한 힐링
우리는 오호리 공원에서 잠시 걸으며 쉬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들른 그 공원이 생각보다 너무 편안한 겁니다. 특별이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사진을 찍으로 바쁘게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고, 어딜 가야할지 휴대폰으로 검색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이렇게 둘이 앉아서 편안한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순간 말이 없어지고 침묵이 이어져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휴대폰을 보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런 시간이 아깝지 않았고 생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여행을 가면 이상하게 뭔가에 쫒기 듯 마음이 바빠지곤 합니다. 모처럼의 기회이고 여기까지 왔으니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먹어야 하고, 유명하다는 곳은 하나라도 더 가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처럼요. 그런데 오호리 공원에서 친구와 함께 앉아 있으니 그런 마음이 사라지며 평온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친구 덕분에 이런 시간을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나에게도 이런 시간이 필요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 같습니다. 친구와 만나서 마음껏 이야기하고, 아무 말 없이 같이 있어도 괜찮은 시간 말입니다. 만약 이 친구와 함께 가지 않았다면, 오호리 공원에 가지 않았다면 이 여행도 분명히 쇼핑하고 먹고 이동하기 바빴던 1박 2일짜리 일정표 하나로 기억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원에서 보낸 평온한 5~6시간 덕분에 후쿠오카 여행이 조금 다르게 기억 속에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후쿠오카 여행은 캐리어를 잃어버리는 아찔한 사건으로 시작해, 오호리 공원에서 천천히 쉬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짧은 1박 2일이었지만, 다음 여행에서는 무엇을 더 볼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먼저 정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친구와 여행할 또 다른 기회가 생긴다면, 유명한 곳을 하나 더 넣기보다는 아무 일정도 없는 시간을 일부러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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