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도쿄 한복판에서 총기가 사라진 남편이 되었습니다.
도쿄에서 12년을 살았던 제가 도쿄의 복잡한 지하철 역사에서 헤매고 말았습니다.
나름 변명을 해보자면, 가족과 함께라서 무작정 올라탈 수는 없었다고요! 저 혼자였으면 마치 헤매지 않고 있는 듯 일단 올라탔을 겁니다.

총기를 잃어버린 남편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약 3년간 일본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고, 한국 대학으로 편입했고 대학 졸업 후, 취업하자마자 일본 지사로 발령을 받고 일본 도쿄에서 9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모두 합치면 도쿄에서 약 12년 이상을 생활한 것입니다.
도쿄에서 이곳저곳 이사를 다니며 직장생활을 했지만, 정작 일본이라는 나라를 여행해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내가 사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해, 모든 것이 익숙했기에 여행할 생각을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 여행을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번에 선택한 여행지는 도쿄였습니다. 솔직히, 도쿄로 여행을 가면 어디서 뭘 해야 하며, 어딜 가봐야 할지 잘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그래도 일본을 좋아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모처럼 좋은 기억을 남겨보기 위해 재팬 모빌리티쇼 외에 다른 계획도 열심히 세웠습니다.
도쿄에 살던 시절에는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기에 특별함을 몰랐지만, 오랜만에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이곳저곳 가보고 싶은 곳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도쿄에 살던 시절에는 일본인들 속에 섞여 일본인처럼 행동하고 말하며 지냈기 때문에 나도 평범한 한 명의 일본인으로 취급을 받았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아무래도 여행자 행색이다 보니 오히려 일본인처럼 행동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 '스미마셍'을 연발하지 않고 당당한 외국인으로 일본을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 일본 생활로 몸에 베인 일본인처럼 행동하는 습관을 홀가분하게 벗어던질 수 있어 자유로움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저는 일본어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여행만큼은 제가 책임지고 가족을 이끌어야 했는데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하죠.
제가 지하철 환승에 주저주저 이 지하철이 우리가 가려는 목적지로 가는 차인지 아닌지 몰라 지하철 하나를 눈앞에서 그냥 보내버리고 역무원에게 물어보며 어리바리했더니, 아내 왈 "총기를 잃었네, 총기를 잃었어."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겁니다!
순간 저는 가족을 바라보며 보며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농담은 농담으로 받아들여야겠죠?
계획이 틀어진 후 찾아간 시부야
도쿄, 유라쿠쵸, 신바시를 돌며 쇼핑에 매진하는 사이, 예약해 뒀던 야끼니쿠집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언제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저녁 식사 예약을 해 둔 가게에 도저히 쇼핑한 짐들을 들고 아이들과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일단 호텔로 돌아가 짐을 풀어놓고 다시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요? 호텔에 들어가니 쇼핑하느라 무거워진 몸을 다시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리도 너무 아팠고 우리 모두는 매우 피곤한 상태였어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때라면 이대로 샤워하고 잠을 청했겠지만, 우린 지금 도쿄를 여행 중인 상황이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일단 주린배를 채우러 호텔 근처에 있는 중식당으로 갔습니다. 불고기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선택이었지만, '계획대로 흐르지 않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이다'라는 생각으로 그 순간을 즐기기로 했죠. 생각보다 맛있었던 저녁을 먹은 후는 저에게는 정말 휴식이 간절한 때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가만둘 리 없죠. 어딘가 가자고 계속 졸라대기에, 우리는 큰 맘을 먹고 전철을 타고 시부야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 길로 하마마츠쵸 전철역으로 가서 야마노테선을 타고 시부야에 갔습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교차로 뷰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이나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곳이죠. 도쿄에 살 때에는 그냥 횡단보도였을 뿐인데, 시부야의 유명한 '스크램블 교차로'라고 해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보행 신호가 켜지자마자 중앙으로 달려가 저마다 셀카를 찍기 시작합니다. 이에 질세라 우리도 뛰어가서 인파 속에서 셀카를 찍어보기도 했어요. 제가 살던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창피한 일이었는데, 관광객으로 마주하니 이 것 또한 추억이 되더군요.
시부야에서는 커다란 게임센터에 가서 열심히 북을 두드리며 게임을 하기도 하고, 인형 뽑기 머신에 붙어 열심히 뽑아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부야의 골목골목을 다니며 상점들과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더라고요. 역시 여행에서는 즉흥적으로 어딘가를 가거나 뭔가를 하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형 뽑기에서 뽑은 귀멸의 칼날 아이템
한국에도 인형 뽑기가 한창 유행 중이고, 곳곳에 인형 뽑기 방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도 한때는 인형 뽑기 방에 가서 필요하지도 않은 인형들을 뽑아대던 적이 있었죠. 한 달에 인형 뽑기만으로 25만 원 이상을 소비한 적도 있습니다. 이후 인형 뽑기를 자제하고 있었는데, 도쿄 여행에서는 참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 참아도 될 것 같았고 한 번 즐기고 싶어 졌습니다. 인형 뽑기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 우리는 대형 인형 뽑기 방에 들러 이것저것 자잘한 인형들을 뽑아봤습니다. 사실 인형을 뽑는다는 행위 자체에 도파민이 터져 즐거울 뿐, 가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중, 저는 딸이 좋아하는 귀멸의 칼날 아이템을 발견했습니다. 커다란 원통 모양의 철통에 과자가 들어있는 상품이었는데요. 몇 번 해보면 뽑힐 것 같은 자태로 올려져 있길래 도전을 해봤습니다. 돈을 넣고, 또 넣다 보니 꽤 큰 금액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거의 내가 만들어놓은 상태라 다름 사람한테 넘기기가 싫었습니다. 한 번 더, 이번에는 뽑히나? 하면서 집중하고 있는데, 보다 못한 점원이 오셔서 기계를 열어 한 번에 뽑을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해 주는 겁니다. 그러고도 두 번 더 해서 녀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한창 귀멸의 칼날을 좋아하던 딸을 위해 꼭 뽑아주고 싶었던 것인데, 돈을 너무 많이 써버린 겁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는 그러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성취감보다는 살짝 허탈한 기분을 느꼈지만 함박웃음과 함께 딸한테 건넸습니다. 딸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받아 들었지만, 딱 그 순간뿐이었습니다. 받아 들고 몇 발자국 안 가서 저한테 내밀며 "아빠가 들어줘." 왜 안주나 싶을 정도로 항상 있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부피 때문에 짐 싸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비싼 돈을 들인 물건인지라, 악착같이 가지고 왔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귀멸의 칼날 양철통은 재활용 쓰레기장에 놓여 있습니다.
나의 일상을 유지하면서 여행할 수 있는 장소는 일본이 딱인 것 같습니다. 다음을 기약하지만, 다음엔 인형 뽑기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