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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당시 북미 박스오피스 첫 주 수익만 1억 1,4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던 영화 '위키드'. 당시 그 엄청난 숫자를 보며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뮤지컬 원작 팬들의 기대치가 워낙 높았던 만큼, 과연 스크린이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거든요. 시간이 꽤 흐른 지금 다시 이 작품을 복기해 봐도 결론은 같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동화 리메이크가 아니었습니다.
엘파바의 춤과 프로파간다: 권력이 만드는 악인
제가 극장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장면은 화려한 군무도, 웅장한 클라이맥스도 아니었습니다. 클럽에서 엘파바가 혼자 춤을 추는 그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모두의 비웃음 속에서 도망치지도, 분노를 폭발시키지도 않고 그냥 춤을 추는 장면인데, 저는 거기서 뭔가 묵직한 것을 느꼈습니다.
엘파바의 행동을 단순히 "당당함"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봤습니다. 그 춤은 오히려 자신마저 속여야 했던 사람의 몸짓에 가깝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마법 능력이 폭발할 때마다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워온 엘파바에게, 춤은 일종의 감정 조절 의식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되, 상처를 들키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였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장면이 갈린다의 죄책감을 건드려 두 사람의 우정을 열었다는 점에서, 이 영화가 인물 심리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더 날카로운 질문이 시작됩니다. 대중의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정보를 왜곡하고 선동하는 프로파간다(Propaganda)의 문제는 이 영화의 핵심 갈등입니다. 오즈 정권이 엘파바를 '사악한 서쪽 마녀'로 낙인찍는 과정은 권력이 어떻게 대상을 악마화하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와 같습니다. 마담 모리가 칠판에 남긴 "동물들은 말하지 마라"는 낙서 하나가 학생들을 서서히 선동하는 도구가 되었고, 오즈는 마법을 전혀 쓰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임에도 거대한 장치와 연출로 신적인 권위를 구축했습니다.
사건을 특정 관점에서만 조명해 대중의 인식을 유도하는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의 원리는 극 중 갈린다를 영웅으로, 엘파바를 범죄자로 둔갑시키는 오즈의 연출력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미디어가 어떤 프레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사건도 영웅담이 되거나 범죄 기록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언론진흥재단).
영화 속 갈린다의 서사도 이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는 결국 원하던 자리에 올랐지만, 실제로는 오즈 정권의 꼭두각시가 되어 친구의 죽음을 기뻐하는 연기를 해야 했습니다. 사회적 성공과 내면의 공허함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설정은, "좋은 마녀"와 "나쁜 마녀"라는 이분법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뼛속까지 보여줍니다.
위키드가 오즈의 마법사 원작과 연결되는 핵심 설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노란 벽돌길: 오즈가 에메랄드 시로 향하는 경로로 직접 기획한 시설물
- 하늘을 나는 원숭이 부대: 원래 오즈를 지키던 병력이었으나, 엘파바의 마법 이후 행동 방식이 역전됨
- 은색 구두: 네사로즈가 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이자, 훗날 도로시의 집에 깔려 죽은 동쪽 마녀가 신었던 바로 그 구두
- 갈린다의 공주풍 의상과 엘파바의 검은 모자·빗자루: 1939년 MGM 영화 '오즈의 마법사' 캐릭터 디자인과 거의 동일
서사 구조의 아쉬움: 스펙터클이 삼킨 심리극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이 장면은 정말 잘 만들었다"는 감탄과, "지금 가장 중요한 걸 지나치고 있는 거 아닌가"라는 불안이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서사의 무게 중심이 내면이 아닌 외면으로 쏠렸다는 점입니다. 엘파바가 오즈 정권의 부조리를 깨닫고 혁명의 길을 선택하는 과정은 이 영화 전체의 가장 중요한 심리적 전환점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이 번번이 웅장한 컴퓨터 그래픽과 군무 시퀀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관객이 인물의 내면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기 전에 다음 스펙터클로 넘어가 버리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예상 밖의 문제였습니다. 예고편만 봤을 때는 시각적 화려함이 오히려 이야기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 기대했거든요.
주인공이 이야기 전반에 걸쳐 겪는 내면의 변화 곡선인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가 선명할수록 관객은 인물에게 깊이 몰입하게 마련입니다. 좋은 서사일수록 이 아크가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위키드 파트 1은 엘파바의 캐릭터 아크가 클라이맥스 직전에 끊겨 버립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두 편으로 나누는 상업적 결정 때문입니다.
사실 이 전략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반대로 원작의 방대한 세계관을 제대로 담으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논리도 이해하지만, 제 경험상 한 편의 영화로서 가장 감정이 폭발해야 할 순간에 "다음 편에서 계속"이라는 신호가 오면 그 정서적 충격이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피에로의 서사도 비슷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왕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의도적으로 가벼운 이미지를 연기하면서도,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아기 사자 구출 같은 정의로운 행동을 해온 인물입니다. 이 이중성은 충분히 흥미로운 캐릭터적 긴장감을 만들 수 있었는데, 스크린 위에서는 그 깊이가 충분히 발화되지 못했습니다. 단순한 사건 나열을 넘어 인물의 감정과 동기를 관객에게 체험시키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측면에서 볼 때, 피에로의 캐릭터적 긴장감이 화려한 비주얼에 가려진 점은 못내 아쉽습니다.
뮤지컬 원작의 내러티브 밀도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단지 음악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캐릭터들의 선택이 쌓이고 충돌하면서 만들어지는 심리적 층위가 두텁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는 2003년 초연 이후 23년째 장기 흥행을 이어오고 있는 작품으로, 그 서사적 완성도는 공연 예술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출처: 브로드웨이 리그).
결국 위키드 파트 1은 훌륭한 도입부이자 불완전한 한 편의 영화입니다. 선과 악을 가르는 경계가 권력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그 서늘한 메시지는 분명 가슴에 남습니다. 다만 그 서늘한 메시지가 파트 2의 거대한 피날레 속에서도 휘발되지 않고 인물의 내면에 깊숙이 착지했는지는,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제가 두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봤을 때, 아이들이 가장 오래 기억한 건 화려한 비행 장면이 아니라 엘파바가 홀로 춤을 추던 그 조용한 장면이었습니다. 좋은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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