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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볼 때 그냥 '광주를 배경으로 한 역사 드라마'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만섭이 차를 돌리는 그 한 장면에서 예상치 못하게 목이 메어 버렸고, 그 이후로 이 영화를 몇 번이나 다시 꺼내 봤습니다. 단순한 감동 그 이상의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습니다.

소시민의 각성, 그리고 휴머니즘의 정의

이 영화가 위대한 이유를 두고 "역사적 소재 덕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핵심은 주인공 김만섭이라는 인물의 설계 방식에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밀린 월세를 해결하려고 남의 손님을 가로채는, 어떻게 보면 꽤 얄팍한 인물입니다. 그 얄팍함이 오히려 이 영화의 휴머니즘(Humanism)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거창한 이념이 아닌 눈앞의 고통에 반응하는 보통 사람의 감각, 즉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에 두는 휴머니즘(Humanism)의 실체가 만섭이라는 인물의 변화를 통해 강렬하게 증명됩니다.

 

만섭이 참혹한 현장을 목격하고 차를 돌리는 순간, 저는 그 장면에서 '영웅의 탄생'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반응'을 봤습니다. 정치적 신념도, 역사적 사명감도 없이 그저 사람이 죽어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감각.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휴머니즘의 실체라고 저는 봅니다.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보면서 느낀 건데, 이 각성의 순간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영화가 만섭을 처음부터 너무 좋은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채로 옳은 선택을 한다는 것, 그게 오히려 더 깊이 박힙니다.

증언의 힘, 카메라가 역사를 바꾸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테마는 '기록과 증언의 힘'입니다. 위르겐 힌츠페터는 실존 인물로, 광주의 참상을 필름에 담아 세계에 알린 독일 공영방송 ARD의 기자입니다. 영화는 그의 카메라가 단순한 취재 도구가 아니라 국가 폭력에 맞서는 저항의 수단임을 보여줍니다.

 

저널리즘(Journalism)의 본질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사실을 수집해 공중에게 전달하는 저널리즘(Journalism) 본연의 사명은, 당시 광주를 고립시켰던 철저한 언론 통제(Media Blackout)의 장벽을 뚫고 힌츠페터의 필름 속에 담겨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힌츠페터의 필름은 바로 그 차단막을 뚫은 기록물이었습니다.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이는 광주의 기록이 단순한 지역적 사건을 넘어 인류 보편의 역사적 자산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기록이 역사를 지켰다는 것을 국제 사회가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오늘날의 상황과 자꾸 겹쳐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도 폐쇄적인 조직 안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일들이 증거와 기록 하나로 뒤집히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목숨을 걸었던 그 시절의 기록과 차원은 다르지만,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의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주 시민의 연대, 그 온기의 정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카체이싱이 아닙니다. 광주 택시 기사들이 만섭과 힌츠페터를 에워싸며 함께 달리는 그 장면, 그리고 눈물을 삼키며 주먹밥을 건네던 시민들의 손입니다.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공동의 위기 앞에서 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의 곁을 지키는 사회적 연대(Social Solidarity)의 힘은 주먹밥을 건네고 헌혈 행렬에 동참했던 광주 시민들의 손길을 통해 가장 숭고한 형태로 재현됩니다. 이 영화 속 광주 시민들의 행동은 그 교과서적 정의를 가장 날것의 형태로 보여줍니다. 누가 시키지 않았고, 보상도 없었으며, 오히려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곁에 있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 행렬을 이루고 부상자를 돌봤다는 사실은 역사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출처: 5·18 기념재단). 영화는 이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작은 손짓과 눈빛으로 담담하게 재현합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오래 남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장면들은 반복해서 볼수록 처음과 다르게 읽힙니다. 처음엔 감동으로 봤던 장면이, 두 번째엔 공포로 읽히고, 세 번째엔 경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발휘하는 선함이 얼마나 이례적인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후반부 액션 연출, 아쉬움을 숨기지 않겠습니다

이 영화를 두고 완벽한 걸작이라고 단언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거기엔 한 가지 단서를 달고 싶습니다. 후반부 연출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서 아쉬움이 큽니다.

 

삼거리 검문소를 빠져나온 뒤 펼쳐지는 대규모 카체이싱 시퀀스는 제가 직접 여러 번 돌려봐도 볼 때마다 이질감이 듭니다. 그전까지 영화가 쌓아 올린 사실적 긴장감의 결이 그 장면에서 갑자기 달라집니다. 관객이 이야기의 세계관에 깊이 동화되는 내러티브 몰입도(Narrative Immersion)가 후반부의 과잉된 카체이싱 액션으로 인해 다소 흔들린 점은, 사실주의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뼈아픈 대목입니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감정의 선이 오락적 스펙터클에 가려진 느낌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복조장 캐릭터에 대해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를 통해 당시 국가 권력의 구조적 폭력성을 드러낼 수 있었는데, 영화는 그를 입체적인 악으로 풀어내기보다 일차원적인 추격자로 소비합니다. 국가 폭력의 시스템적 속성을 보여주기보다 개인의 악함으로 귀결시켜 버린 셈입니다.

 

후반부의 아쉬운 지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삼거리 검문소 이후 카체이싱 장면이 사실적 긴장감의 결을 끊어버림
  • 사복조장 캐릭터가 구조적 폭력보다 개인적 악으로만 소비됨
  • 국가 권력의 시스템적 속성을 파고들 기회를 오락적 연출로 휘발시킴

물론 이 아쉬움이 영화 전체의 가치를 흔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정도의 역사적 소재를 다뤘다면 끝까지 그 무게를 밀고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지금도 남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거창한 이념 없이도 평범한 사람의 양심이 역사를 기록하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후반부 연출의 아쉬움을 인정하면서도, 만섭이 차를 돌리는 그 한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를 다시 볼 이유는 충분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지금이라도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두 번 보시기를 권합니다. 처음과 다른 것이 보일 겁니다.

 

만섭이 광주에서 차를 돌릴 때 가장 무겁게 발목을 잡았던 건 서울에 혼자 있을 딸의 얼굴이었을 겁니다. 저 역시 한 가정을 책임지는 아빠로서, '딸을 챙겨야 하는 나'와 '사람을 살려야 하는 나' 사이에서 만섭이 내린 그 고통스러운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이었는지를 다시금 가슴에 새겨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BsI2caTJ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