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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한 발 없이 만든 영화가 이렇게까지 심장을 두드릴 수 있을까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진짜로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와 인쇄기 소음만으로 거대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이 영화, 일반적으로 "언론 자유를 다룬 교과서 같은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평가는 절반만 맞습니다.

펜타곤 페이퍼, 베트남전의 숨겨진 진실

1971년 미국 전역을 뒤흔든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는 트루먼부터 존슨에 이르기까지 네 명의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실상과 패전 가능성을 어떻게 국민에게 숨겨왔는지 내부에서 낱낱이 기록한 국방부 최고 기밀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의 핵심 결론은 섬뜩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미국이 수많은 젊은이의 피를 흘리며 전쟁을 이어간 이유는 군사적 승산이 있어서가 아니라, "첫 패전"이라는 정부의 치욕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배경을 알고 다시 영화를 봤을 때 전혀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국가의 자존심과 정치권력의 안위를 위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고 간 정부의 결정이, 단지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 기시감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베트남전 당시 미국 정부는 여론 호도를 위해 전황을 조작해 발표했고, 이 행태는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정적 전조가 되었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스필버그가 "때때로 나쁜 일은 두 번 일어난다"라고 밝히며 이 영화를 만든 시점이 2017년이라는 점도 놓칠 수 없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가짜 뉴스"를 외치며 언론과 정면 충돌하던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1970년대 닉슨과 2017년의 정치 지형이 겹쳐 보이도록 설계된 영화였던 셈입니다. 2026년인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되돌아보아도 가짜 뉴스의 범람과 권력의 언론 통제 기류는 여전히 유효하기에, 이 영화의 메시지는 매번 가슴을 철렁하게 만듭니다.

 

영화가 뉴욕 타임스가 아닌 워싱턴 포스트를 중심에 놓은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스필버그는 최초 보도자가 아닌 후발 주자를 택함으로써, 언론 자유의 싸움이 한 신문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동시에 최초의 여성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미국 사회의 젠더 권력 구조, 즉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성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왔는지를 함께 고발합니다.

언론 사명감, 편집권과 경영권 사이의 진짜 긴장

일반적으로 언론 영화에서 사주(발행인)는 기자들의 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 영화가 그 공식을 가장 정직하게 깨뜨리는 지점이 바로 캐서린 그레이엄의 딜레마를 묘사하는 방식입니다.

 

광고주나 경영진의 어떠한 이해관계나 압력으로부터도 기사 내용을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편집권(Editorial Independence)의 가치는 기자들에게 목숨과도 같습니다. 이 싸움에서 패배해 옷을 벗더라도 기자 개인에게는 영광스러운 훈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모든 재산과 신문사의 생존을 책임진 발행인에게 보도 강행이란 신문사 존폐 자체가 달린 문제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진짜 놀랐던 건, 캐서린이 수화기 너머로 인쇄 허가를 결정하던 그 짧은 침묵 속에 단순한 사명감이 아니라 '회사가 공중분해되고 평생을 일군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팽팽하게 고여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스필버그는 그 처절한 공포를 메릴 스트립의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 하나로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

 

톰 행크스가 맡은 편집장 벤 브래들리는 이른바 사건의 관찰자형 인물입니다. 이 유형은 극을 직접 이끌기보다는 주변을 정확하게 읽고 서술하는 역할로, 행크스가 스필버그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맡아온 포지션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톰 행크스는 빈티지 타자기 컬렉터로 알려져 있어서, 편집국 장면에서 "타자 자세가 틀렸다"라고 후배 기자를 핀잔주는 대사가 스크린 밖의 그 사람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혼자 피식 웃었던 건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더 포스트》와 비슷한 계열의 언론 저널리즘 영화를 꼽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의 실화
  • 《스포트라이트》(2015): 보스턴 글로브의 가톨릭 성추행 사건 탐사보도 (각본가 조시 싱어가 두 영화 모두 집필)
  • 《1987》(2017): 한국판 언론 탄압과 대중의 저항을 다룬 실화 기반 정치 드라마

흥미로운 건 《스포트라이트》가 저널리즘의 작동 방식 그 자체를 건조하게 해부했다면, 《더 포스트》는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무게를 더 실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선택이 영화의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된다고 봅니다.

영웅주의적 연출, 감동과 과잉 사이

솔직히 이 부분은 제가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한 대목입니다. 일반적으로 스필버그의 정치 드라마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끈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매끈함이 오히려 역사의 거친 질감을 지워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합니다.

 

특정 사건을 의도된 관점에서만 서술하여 대중의 해석과 감정을 유도하는 내러티브 프레이밍(Narrative Framing) 기법을 통해, 영화 《더 포스트》는 워싱턴 포스트의 후발 보도를 완벽한 영웅적 서사로 설계해 냅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위험을 감수하고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다 법원으로부터 발행 정지를 당했던 진짜 주역, 뉴욕 타임스는 사실상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처음 총대를 멘 사람보다 두 번째로 들어온 사람의 이야기가 더 극적으로 소비되는 구조인 셈인데, 이건 역사적 사실의 무게추를 의도적으로 뒤튼 것이라 제 눈에는 조금 불편하게 보였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전형적인 할리우드 카타르시스 구조, 즉 위기→결단→승리의 흐름이 선명해지면서 복잡했을 현실의 이면이 지워집니다. 미국 언론자유재단(Freedom of the Press Foundation)의 기록에 따르면, 이 시기 보도를 둘러싼 법적 공방은 영화가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지저분한 협상과 타협의 연속이었습니다(출처: Freedom of the Press Foundation). 영화는 그 복잡함을 과감하게 생략했고, 그 자리를 감동적인 장면들로 채웠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저는 권력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신문사와 사법적 파멸을 걸고 결단을 내렸던 캐서린의 모습에서 한 가정의 부모가 가져야 할 무거운 책임감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거친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녀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단지 회사의 주가가 아니었습니다. 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권리'라는 가장 떳떳하고 단단한 가치를 유산으로 물려주겠다는 부모로서의 숭고한 결단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기에 닉슨 정부가 제기한 소송을 기각하며 "연방 대법원은 언론이 통치자가 아닌 피통치자를 섬겨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라는 대법관의 판결문이 스크린에 울려 퍼질 때,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묵직한 다짐이 가슴을 뜨겁게 채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의 극적인 각색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스필버그 본인이 "지금 이 영화가 필요하다"라고 판단했던 시대적 맥락이 있고, 메시지를 최대한 선명하게 전달하려면 어느 정도의 서사적 단순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으니까요.

 

《더 포스트》는 분명 잘 만든 영화입니다. 총 한 발 없이 두 시간 내내 긴장을 유지하는 연출력은 여전히 경이롭습니다. 다만 이 영화를 언론 자유의 완벽한 교과서로 맹신하기보다는, 특정 시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영화로 읽는 것이 더 정직한 감상일 것입니다. 극장을 나서며 가슴이 뜨거워졌다면 그 감정은 진짜입니다. 다만 그다음 질문, "이 영화가 가려버린 진짜 역사적 주역은 누구인가"를 스스로에게 한 번쯤 던져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