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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심심풀이로 틀었다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돈 룩 업(Don't Look Up)》입니다. 처음에는 흔한 할리우드식 SF 재난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스크린을 채운 서사를 보고 나서 밀려오는 감정은 공포보다 뼛속 깊은 서늘한 기시감에 가까웠습니다. 화면 속 떨어지는 혜성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이야기를 그대로 베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의제설정과 확증 편향이 만들어낸 집단적 실패

영화는 천문학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민디 교수)와 제니퍼 로렌스(케이트)가 지구 충돌 혜성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문을 엽니다. 과학적으로 지구 멸망 확률이 99.9%에 달하는 명백한 사실을 가지고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으로 향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 오직 지지율 계산에 바쁜 정치인들의 무관심과 비웃음뿐입니다.

 

여기서 언론이 어떤 사안을 얼마나 비중 있게 다루느냐에 따라 대중의 관심 자체를 교묘하게 통제하고 조종할 수 있는 미디어 의제설정(Agenda-setting)의 거대한 힘을 영화는 아주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영화 속 방송국은 지구를 삼킬 혜성 충돌 경고보다 연예인의 자극적인 가십을 메인 뉴스에 우선 편성하고, 진짜 진실을 외치는 과학자 케이트를 그저 조울증 환자 취급하며 희화화합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들을 지켜봤을 때 가슴 한구석이 가장 불편했습니다. 미디어가 본질을 흐리는 그 기만적인 모습에 틀린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거든요.

 

여기에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한 진실은 무의식적으로 걸러내 버리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늪이 결합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영화 속 '돈 룩 업(하늘을 보지 마)' 진영은 눈앞에 다가오는 혜성의 존재를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오히려 진실을 규명하려는 쪽을 사회 혼란 세력으로 공격합니다.

 

실제로 이 서글픈 현상은 영화 밖에서도 측정됩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기후 변화를 인간 활동의 결과로 보지 않는 과학 부정론자들의 비율이 교육 수준의 높고 낮음과 무관하게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출처: Gallup).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교육받고 데이터가 넘쳐나는 세대에서 오히려 확증 편향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증거입니다.

 

영화 속 풍자가 특히 날카롭게 느껴졌던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백악관 브리핑에서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지구의 안위보다 당장 내일의 중간선거 지지율 계산을 먼저 꺼내는 장면
  • 탐욕스러운 IT 기업 CEO 피터가 혜성에 매장된 천문학적 가치의 광물 채굴을 위해 인류를 구할 구조 로켓을 강제 회수하는 장면
  • 하늘을 보라는 '룩 업' 챌린지가 바이럴을 타자, 정부가 조직적으로 '돈 룩 업' 챌린지로 맞불을 놓으며 여론을 진영 논리로 쪼개버리는 장면

이 장면들은 사실상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뉴스 속 현실의 압축판입니다. 제 경험상 거대한 재난 앞에서는 인간이 조금 다를 것이라고 일말의 기대를 품었었지만, 오히려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덜 과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블랙코미디의 완성도와 후반부의 한계

영화 《돈 룩 업》은 죽음과 재난, 그리고 권력의 부조리처럼 본래 무겁고 비극적인 소재를 의도적으로 희화화하여 그 이면의 모순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블랙코미디(Black Comedy)의 정수를 전반부에서 탁월하게 구사해 냅니다. 순수했던 과학자 민디 교수가 방송 권력에 맛을 들여 셀럽처럼 소비되고, 진실을 외치던 케이트가 FBI에 체포되는 장면까지는 특유의 서사적 리듬이 아주 날카롭게 살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영화가 전편 완성도가 대단히 높은 걸작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다소 평면적으로 무너지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혜성이 육안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영화는 신선한 풍자 대신 동일한 메시지를 훈계조로 반복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자본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차원적인 악역으로 고정되어 있고, 그들이 왜 그런 몰상식한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내면의 논리는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풍자 대상을 단순히 조롱으로 소비하는 것과, 그 대상의 심리를 처절하게 해부하여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수준의 이야기인데 말입니다.

 

이 오만한 태도를 마주하다 보면 자신의 신념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가혹한 현실을 마주할 때 생기는 심리적 불편감을 줄이고자 오히려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해 버리는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상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영화 속 악역들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적 논리 안에서 그것을 완벽하게 합리적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그 비뚤어진 내면을 깊이 보여줬다면 한 층 더 묵직해졌을 겁니다. 실제로 관객이 악역의 내적 논리를 명확히 이해할 때 자신의 위선을 더 깊이 성찰한다는 서사 심리학 연구 결과도 존재하니까요(출처: APA PsycNet).

종말의 식탁에서 건져 올린 아빠의 시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제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긴 유일한 지점은, 화려한 스펙터클이 아니라 민디 교수의 마지막 여정이었습니다. 순수했던 과학자에서 세상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잠시 영혼을 빼앗겼던 그가, 마침내 각성하여 거대한 파멸 앞에서 무력한 사과의 눈물을 흘리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대목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 저는 거대한 혜성이 마침내 대기권을 뚫고 추락하여 온 집안이 거칠게 흔들리는 그 종말의 순간, 민디 교수가 가족들과 나란히 둘러앉아 평범한 저녁 식사를 나누며 "생각해 보면 우리 정말 부족한 게 없었어"라고 담담하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먹먹해졌습니다. 세상이 온통 탐욕의 숫자로 미쳐 돌아가고 하늘에서 재앙이 쏟아질지라도, 부모가 끝까지 지켜내야 할 단 하나의 진짜 가치는 거창한 영웅주의가 아니라 내 아이들의 손을 꼭 잡고 따뜻한 밥 한 끼를 평화롭게 나누는 일상의 소박한 존엄성임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 룩 업》은 절반쯤은 날카로운 걸작이고 절반쯤은 아쉬운 풍자극입니다. 그럼에도 2026년 오늘날 우리가 이 영화를 한 번은 꼭 꺼내 봐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기후 위기나 새로운 감염병의 위협,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인공지능(AI)의 폭주처럼 지금 당장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혜성들을 대하는 우리 자신의 비겁한 태도를 거울처럼 정직하게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혜성이 머리 위까지 날아와도 진영 논리와 눈앞의 이익 때문에 끝내 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들. 그 비포장된 위선의 얼굴이 결코 남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꽤 불편하게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 밤,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피드들을 잠시 꺼두고 스스로에게 한 번쯤 정직한 질문을 던져보셨으면 합니다. "나는 지금 내 삶에서 눈을 감은 채, 어떤 거대한 혜성을 외면하고 있는가"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