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천재적인 데뷔작 《메멘토》는 파격적 이게도 이야기의 최종 결말을 첫 장면에 당당히 배치한 채, 시간의 태엽을 거꾸로 돌려가며 서사를 전개하는 기묘한 방식을 취합니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저는 20분쯤 지나고 나서야 스크린 속 화면이 저를 어느 기괴한 방향으로 데려가려 하는지 겨우 감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본의 각본을 온전히 이해하는 순간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단 한순간도 시선을 스크린 밖으로 돌릴 수 없었습니다.비선형 서사 구조가 만들어낸 심리 실험영화 《메멘토》의 가장 독보적인 특징은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풀지 않고 현재와 과거, 혹은 결과와 원인을 정교하게 뒤섞어 배치하는 비선형 서사(Non-linear Nar..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전쟁 영화란 모름지기 영웅의 활약이나 극적인 역전 장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덩케르크는 그 어떤 통쾌한 역전도 없이, 그냥 살아남는 이야기만 두 시간 동안 밀어붙입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압도적인 몰입감, 그러나 감정 이입이라는 벽덩케르크가 만들어낸 몰입감의 핵심에는 사운드 디자인과 비선형 서사 구조(Non-linear Narrative Structure)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교차해 편집하는 비선형 서사 구조(Non-linear Narrative Structure)는 관객으로 하여금 해변의 일주일, 바다의 하루, 하늘의 한 시간을 동시에 체험하게 만드는 마법을 부립니다. 처음에는 이 얽힌 시간축이 헷갈려 ..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인류는 스스로 만든 가장 강력한 불꽃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저는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제가 느낀 건 경이로움과 불편함이 뒤섞인 묘한 감각이었는데, 그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이 글에서 풀어보려 합니다.맨해튼 프로젝트, 천재들을 한데 모은 건 무엇이었을까리처드 파인만, 존 폰 노이만, 엔리코 페르미, 한스 베테.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20세기 물리학의 거인들이 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남자가 바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입니다.그렇다면 노벨상조차 받지 못한 오펜하이머가 어떻게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요? 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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