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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인류는 스스로 만든 가장 강력한 불꽃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저는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제가 느낀 건 경이로움과 불편함이 뒤섞인 묘한 감각이었는데, 그 감각이 어디서 왔는지 이 글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천재들을 한데 모은 건 무엇이었을까

리처드 파인만, 존 폰 노이만, 엔리코 페르미, 한스 베테.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20세기 물리학의 거인들이 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남자가 바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입니다.

그렇다면 노벨상조차 받지 못한 오펜하이머가 어떻게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들의 리더가 될 수 있었을까요? 한스 베테는 오펜하이머를 가리켜 "우리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단순한 지적 능력을 넘어서, 상대방의 생각을 빠르게 흡수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이 남달랐다는 뜻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도 그 지점이었습니다.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모든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답을 끌어내는 사람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미군 주도하에 영국과 캐나다가 전례 없는 규모로 결집한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는,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핵분열 반응을 실전용 폭발 장치로 구현해 내기 위한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과학적 도박이었습니다. 그 도박의 중심에는 무거운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해 둘로 쪼개지며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핵분열(Nuclear Fission)의 원리가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는 아인슈타인의 수식 속에 잠자고 있던 거인을 깨워 사막 위 거대한 폭발이라는 실체로 끄집어낸 근간이 되었습니다.

총 13만 명이 동원되었고, 당시 돈으로 20억 달러, 현재 가치로 약 42조 원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아무것도 없는 이론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42조 원짜리 프로젝트를 단 3년 만에 완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거든요.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적 핵심은 내폭 방식(implosion design)에 있었습니다. 핵물질을 구형으로 감싸 안으로 터뜨림으로써 임계 질량에 도달하게 하는 내폭 방식(Implosion Design) 설계는, 당시 과학기술의 한계를 시험하는 가장 정교한 공학적 도전이자 트리니티 실험의 성공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였습니다. 이 설계 방식이 트리니티 실험에 사용된 32면체 폭탄 '가젯'에 적용되었고, 이후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 맨(Fat Man)으로 이어졌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이 프로젝트를 이끈 배경에는 개인사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에서 탄압을 피해 망명한 유대인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치 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손에 넣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이름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든 결정적 계기였습니다(출처: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트리니티 실험과 영화 오펜하이머, 무엇이 남았는가

1945년 7월 16일 새벽,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 사막의 30미터 철탑 위에 가젯이 매달렸습니다. 오전 5시 29분 45초, 세계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Trinity)가 성공했습니다. 트리니티라는 이름은 오펜하이머가 읽던 시인 존 던의 시에서 가져왔습니다. 충격파는 160킬로미터 밖에서도 느낄 수 있었고, 폭발 순간의 온도는 태양 표면 온도를 능가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이 장면을 보며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 되었다, 세상의 파괴자." 제가 영화에서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등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 순간이 가져올 결과를 그 자신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서늘하게 전해졌거든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트리니티 실험 장면을 CG 없이 실제 폭발 효과로 촬영했습니다. 그 선택이 스크린에서 원초적인 공포로 전달되었고, 저는 그 폭발 장면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았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 대한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리면, 걸작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 지점에서 불편함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 히로시마·나가사키의 민간인 피해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점
  • 비선형 편집이 심리선의 몰입을 반복적으로 끊어놓는다는 점
  • 스트로스 제독과의 권력 갈등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 보이(Little Boy),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 맨(Fat Man)으로 단 두 번의 폭발에서 추정 사망자 수는 히로시마 약 14만 명, 나가사키 약 7만 명에 달합니다(출처: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이 숫자들이 영화에서 철저히 비켜 있었다는 사실은, 놀란 감독이 의도적으로 가해국의 시선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제 경험상 이 빈자리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는 불편함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킬리언 머피의 연기는 반론의 여지없이 압도적입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서 나왔다는 죄책감과 끔찍한 환영에 짓눌리면서도 그것을 직접 드러내지 못하는 오펜하이머의 내면을 눈빛 하나로 표현해 내는 장면들은, 제가 극장에서 관람한 어떤 연기보다 뼛속 깊이 박혔습니다.

핵연쇄반응(nuclear chain reaction)이라는 개념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하나의 분열이 또 다른 분열을 낳으며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는 핵연쇄반응(Nuclear Chain Reaction)은 인류에게 태양의 힘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구 대기 전체를 태워버릴지도 모른다는 근원적 공포를 과학자들의 머릿속에 심어준 시발점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과학자들이 두려워했던 것도 이 반응이 통제를 벗어날 경우 대기 전체를 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고, 실제로 일부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진지하게 계산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1967년 식도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렸지만, 만년에는 핵무기 확산에 반대하다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과학이 낳은 가장 복잡한 인간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2023년 광복절인 8월 15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그 날짜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야 더 선명하게 느꼈습니다. 원자폭탄이 일본의 항복을 앞당겼고, 그것이 한국의 광복과 직결된다는 역사적 맥락이 이 영화를 한국 관객에게 특별한 방식으로 다가오게 만듭니다. 정리하면,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화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영화 관람 전에 유니버셜과 놀란 감독이 합작한 다큐멘터리 전쟁의 종식자: 오펜하이머와 원자폭탄을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영화의 압도적인 시각 언어가 훨씬 깊게 느껴질 것입니다.

오펜하이머가 트리니티 실험 성공 후 느꼈던 그 서늘한 예감은, 어쩌면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돌이킬 수 없는 불꽃'을 던졌다는 아빠로서의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 역시 IT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그 파급력을 고민하듯, 가장으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가 연쇄 폭발의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66W5r_29m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