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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개봉까지 아직 수백 일이나 남은 시점에 4페이지 분량의 전체 플롯이 레딧에 유출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엔 그냥 팬픽 수준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손이 멈췄습니다. 닥터 둠이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가족을 잃은 사람이라는 설정, 그 슬픔이 우주를 집어삼키는 야망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커전과 멀티버스, 이 루머가 심상치 않은 이유

제가 직접 루머 원문을 읽어봤는데, 이야기의 출발점 자체가 꽤 영리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루머에 따르면 영화는 평행 우주들 사이의 막이 찢어지면서 두 개의 지구가 서로 충돌하는 멀티버스적 재난인 인커전(Incursion) 장면으로 강렬하게 포문을 엽니다. 마블 코믹스에서 오랫동안 다뤄온 이 핵심 개념이 실제 영화에 그대로 녹아든다면 단순한 히어로 배틀물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리드 리처즈는 두 현실 사이의 막이 찢기면 5주 안에 자기적 인력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인커전을 막거나 활용하려는 각자의 방식 때문에 영웅들 사이에서도 극심한 갈등이 벌어집니다. 엑스맨 팀은 자신들의 우주를 지키기 위해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우주를 파괴해 왔고, 네이머는 위협적인 지구를 먼저 없애버리자고 주장하며, 샘 윌슨은 유혈 사태 없는 해결을 외칩니다.

 

이 구도가 저는 개인적으로 꽤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과 악이 깔끔하게 나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무고한 우주를 희생시켜 온 이들이 결국 어벤져스의 동료가 된다는 설정은 도덕적으로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마블이 이 불편함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엔드게임 이후 가장 묵직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루머에서 언급된 주요 전문 개념들을 시각적으로 복기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커전(Incursion): 두 평행 우주의 지구가 충돌하는 종말론적 현상
  • TVA(Time Variance Authority): 불법적인 타임라인을 관리하고 삭제하는 시간선 통제 기관
  • 템패드(Tempad): TVA 요원들이 시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때 사용하는 장치
  • 센티넬(Sentinel): 뮤턴트를 추적하고 제압하기 위해 설계된 대형 로봇 수호자

닥터 둠, 악당이 아니라 슬픔이 만들어낸 괴물

제가 이 루머에서 가장 오래 멈춰 있었던 부분은 닥터 둠의 백스토리였습니다. 그는 라트베리아 출신의 연구자였고, 멀티버스를 연구하다 다른 우주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가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인커전으로 연구실이 파괴되고 가족이 죽으면서 흉측하게 변해버렸습니다. 그 뒤로 그는 모든 우주를 단 하나로 통합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루머에 따르면 둠은 과거 타노스가 현실과 시간, 공간 등 우주적 힘을 다스리는 스톤들을 모아 휘둘렀던 인피니티 건틀렛(Infinity Gauntlet)처럼, 로키의 신성한 에너지를 직접 흡수해 멀티버스 전체를 재편하려 합니다. 둠은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로키라는 존재 자체를 하나의 연료로 사용한 셈입니다.

 

솔직히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로키가 걱정됐습니다. 드라마 시즌 2에서 모든 시간선을 혼자 고독하게 붙들고 서 있던 그 숭고한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극한까지 자신을 소모한 캐릭터가, 영화에서는 둠에게 척추가 뽑히듯 힘을 빼앗기고 죽어 있는 채로 발견된다는 설정은 팬으로서 정말 화가 나면서도 동시에 그래서 더 슬펐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닥터 둠의 이 잔혹한 복수극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들을 잃은 아버지가 느꼈을 그 지옥 같은 절망이 눈에 선했기 때문입니다. 내 아이를 되찾을 수만 있다면 온 우주를 파멸로 몰고 가더라도 상관없다는 그 비뚤어진 부성애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임이 분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저릿한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캐릭터 남용의 아쉬움, 그리고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

제 경험상 마블 멀티버스 영화의 가장 큰 함정은 반가운 얼굴이 너무 많아서 정작 아무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번 루머를 읽으면서도 그 불안감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 토비 맥과이어의 스파이더맨, 겜빗까지 등장하지만 이들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서사는 보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영화 산업 전반에서 팬서비스와 서사 밀도 사이의 균형 문제는 꾸준히 논의되어 왔습니다. 콘텐츠 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속편이나 시리즈물에서 기존 캐릭터의 등장 빈도가 높을수록 단기 흥행에는 유리하지만 장기적인 프랜차이즈 신뢰도는 오히려 하락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그럼에도 이 루머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질문만큼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세계를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물음입니다. 엑스맨들은 뮤턴트 종의 멸종을 막기 위해 그렇게 해왔고, 닥터 둠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되찾기 위해 온 우주를 하나로 압축하려 합니다. 이 질문은 스크린 밖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세계를 지워버리려는 충동은, 우리가 매일 뉴스와 SNS에서 목격하는 장면들과 꽤 많이 닮아 있습니다.

 

마블 히어로 영화의 흥행 요소에 관한 연구에서도, 단순한 액션보다 도덕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일수록 관객의 재관람 의사와 입소문 효과가 높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유출된 플롯이 전부 사실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개봉 전 루머는 언제나 절반은 맞고 절반은 빗나가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번 루머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극장에서 실제 영화와 이 루머를 직접 비교해 보며, 이 서늘한 도덕적 질문들이 어떻게 스크린에 착지할지 지켜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