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납치된 여객기를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걸 믿으셨습니까? 저는 솔직히 반신반의하면서 화면을 켰습니다. 퇴근 후 지쳐 소파에 쓰러진 채로 틀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1970년 실제 항공기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굿뉴스》 이야기입니다.
블랙코미디가 실화를 만날 때 — 변성현 감독의 연출
1970년 3월, 일본 적군파(赤軍派) 9명이 일본항공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한 요도호 사건은 단순한 항공 테러가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 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무력 투쟁을 감행했던 1960~70년대 일본의 극좌 무장 단체, 적군파가 여객기를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을 시도한 이 사건은 단순한 테러 이상의 시대적 비극이었습니다. 영화는 이 사건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시작 자막에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음. 다만 모든 등장인물과 상황은 상상에 의한 허구임"이라고 대놓고 써넣습니다. 처음엔 면피용 문구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게 영화 전체의 태도를 선언하는 문장이었습니다.
변성현 감독은 인물을 프레임 정중앙에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센터 프레이밍(Center Framing) 기법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영화적 문법과는 사뭇 다른 선택입니다. 피사체를 화면의 교차점에 두어 안정감과 시각적 몰입을 유도하는 삼분할 구도(Rule of Thirds)라는 영화계의 오랜 약속을 깨뜨림으로써, 감독은 관객이 인물과 사건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상황을 냉소적으로 관찰하게 만듭니다. 센터 프레이밍은 오히려 그 몰입을 의도적으로 깨면서 인물이 카메라 밖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이 방식을 가장 일관되게 구사하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죠.
제가 이 기법이 《굿뉴스》에서 제대로 작동한다고 느낀 건 일본 간부들이 작전을 짜는 초반 장면에서였습니다. 앞뒤가 뒤바뀐 비행기 그림 앞에서 설명이 막히는 그 짧은 신 하나로 이 영화가 어떤 온도로 달릴 것인지를 단숨에 알게 됩니다. 이런 연출 선택은 그냥 스타일이 아니라 감독의 의도입니다. 비극적 상황을 냉소와 유머로 비틀어내는 블랙 코미디의 문법 안에서, 과도한 몰입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몰입을 방해하는 독특한 연출이 이 영화에서는 역설적으로 가장 강력한 풍자의 무기가 되는 셈이죠.
《굿뉴스》에서 감독이 겨누는 칼날은 한쪽이 아닙니다. 일본 정치인도, 한국 관료도, 이념을 앞세우는 인물들도 하나같이 자기 배만 채우는 인간들로 그려집니다. 매일 게임 퍼블리싱 일정에 쫓기며 어이없는 지시에 웃어넘길 수밖에 없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이 영화 속 작전 회의 장면들이 단순한 풍자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냥 제 회의실 풍경 같아서 더 찔렸습니다.
이 영화가 풍자하는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무능한 관료주의: 자위대를 공항에 대놓고 배치해 협상을 망치는 일본 측의 판단 착오
- 정치적 실리주의: 인질보다 외교적 체면을 먼저 따지는 한일 양국의 계산
- 이념의 공허함: 정작 무기가 전부 모조품이었던 적군파의 실체
배우들이 이 세계를 완성한 방식 — 홍경과 앙상블
블랙 코미디는 배우가 반만 해도 허물어집니다. 감정을 과하게 쏟으면 코미디가 죽고, 너무 건조하면 이야기가 공중에 떠버립니다. 이 균형을 잡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장르를 많이 봐온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굿뉴스》의 초반은 일본 배경에 일본 배우들이 주로 등장합니다. 여기서 캐스팅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나가야마 에이타, 야마다 타카유키처럼 일본에서 연기력으로 검증된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들이 변성현 감독의 딱딱하고 건조한 유머 코드를 아주 정확하게 소화합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이 캐스팅 결정이 영화 초반 30분의 몰입감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보통 한국 작품에서 일본어 연기 장면은 어색함이 눈에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 불안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홍경입니다. 솔직히 예고편을 볼 때 걱정이 컸습니다. 조연에서 인상을 남긴 배우가 한 작품의 중심을 끝까지 끌고 가는 건 다른 무게의 일이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 걱정이 어디 갔는지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저는 이 배우가 이번 작품에서 알을 깨고 연기파로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이에 이 비주얼과 이 연기력이라면 앞으로 어디 가도 주연으로 불릴 수밖에 없습니다.
류승범도 반가웠습니다. 찌질하면서도 어딘가 서글픈 캐릭터를 그가 맡으면 그건 그냥 류승범입니다. 오랜만에 보니 더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석구는 변성현 감독의 페르소나답게 이 이상한 세계를 관객에게 연결해 주는 화자 역할을 어색함 없이 해냈습니다.
앙상블 연기의 완성도를 논할 때 흔히 쓰는 기준 중 하나가 '앙상블 케미스트리(Ensemble Chemistry)'입니다. 개별 배우의 기량을 넘어 여러 인물이 한 공간에서 빚어내는 총체적 호흡 측면에서 《굿뉴스》는 꽤 성공적인 결과물을 보여줍니다.
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납치된 여객기 안 승객 122명이 겪었을 공포와 절망은 영화 속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지상의 지략 싸움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다 보니 실제 피해자들의 무게감은 증발해 버렸고, 이야기가 끝난 뒤 가슴 깊이 남는 여운보다는 시원하게 터진 웃음의 잔향이 더 컸습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적 온도와 어조의 일관성인 톤 앤 매너(Tone and Manner)를 끝까지 밀어붙인 선택은 이 영화의 확실한 개성이자, 동시에 깊이의 갈증을 남기는 양날의 검이 됩니다.
실제로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장르별 관객 만족도 분석에 따르면, 블랙 코미디 장르는 다른 장르 대비 '재관람 의향'에서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반면 '감동 지수'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굿뉴스》가 그 패턴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글로벌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2023년 기준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에 약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Netflix 공식 미디어 센터). 그 자본이 이번 작품에서 한일 배우 캐스팅과 미술 완성도로 눈에 보이게 구현됐습니다.
《굿뉴스》는 변성현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가장 선명하게 내보인 작품입니다. 별점으로 따지면 저는 5점 만점에 4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극장 스크린으로 걸렸다면 기꺼이 돈을 내고 다시 봤을 것 같습니다. 재미와 여운 사이에서 재미 쪽에 확실하게 베팅한 영화이니, 묵직한 감동을 기대하고 켜시는 분들께는 먼저 그 기대치를 살짝 조정하고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그 조정만 되면, 올해 넷플릭스 한국 영화 중 가장 유쾌하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