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가 '목표 중독'에 걸려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픽사의 소울(Soul, 2020)은 그 사실을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꽤 세게 일깨워줬습니다. 재즈 뮤지션의 꿈을 좇는 조 가드너와 지구행을 수천 년째 거부하는 영혼 22번의 이야기인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사후 세계를 설계한 방식, 얼마나 기발했나픽사가 설계한 세계관은 사후 세계와 '인생 연구소(The Great Before)'라는 형이상학적 공간을 축으로 꽤 철학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특히 영혼들이 지구로 내려가기 위해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 스파크(Spark)는 삶을 향한 강렬한 동기이자, '살고 싶다'는 의지에 불을 붙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이 설정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꽤 신선하다고 느꼈습니..
1979년 10월 26일,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자신이 가장 신임하던 측근의 총에 쓰러졌습니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저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은 바로 그 순간까지의 155일을 추적하는 작품입니다.밀실 권력의 심리전: 도청과 감시가 만든 공포의 생태계중앙정보부(KCIA)라는 조직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입니다. 영화의 배경인 중앙정보부(KCIA)는 단순한 정보 수집을 넘어 정치 공작과 민주화 인사 탄압의 선봉에 섰던, 유신 정권의 거대한 권력 설계도 그 자체였습니다. 김규평 부장은 바로 그 권력 기계의 수장이었음에도 오히려 그 조직에 의해 서서히 짓눌려 갑니다.제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장면은 도청 장면들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그 사실을 ..
은 2001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저도 솔직히 "애니메이션이 그 정도까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 보고 나서는 그 의심이 완전히 부끄러워졌습니다.이름을 빼앗기는 순간, 정체성을 잃는다일반적으로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단순한 권선징악 구조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다시 봤을 때 이 작품은 그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습니다.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이름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마녀 유바바는 이곳에서 일하는 모든 존재의 이름을 계약서로 빼앗아 버립니다. 치히로는 '센(千)'이라는 이름을 강요받는데, 센이란 한자 그대로 '천 명 중 하나'를 뜻합니다. 개성 없는 노동자로 만들어 버리는 방식입니..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앨런 튜링이 전쟁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장으로서,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다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영화 한 편이 제 주말 저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세상을 구한 사람이 세상으로부터 파멸당한 이야기. 그 먹먹함이 며칠을 갔습니다.에니그마 해독, 실제로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나영화의 긴장감을 지배하는 실체는 나치 독일이 사용하던 난공불락의 암호화 기계, 에니그마(Enigma)입니다. 전기 신호가 복잡한 회전판을 통과하며 경우의 수를 무한대로 확장하는 이 기계 앞에서 인류는 절망에 가까운 무력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 기계의 경우의 수가 천문학적이었다는 점인데, 구체적으로는 약 158조 9,0..
영화를 보다가 "이게 지금 꿈이야, 현실이야?" 하며 옆 사람한테 속삭인 적 있으신가요. 저는 처음 인셉션을 극장에서 봤을 때 그 상태로 30분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0년 작 인셉션은 단순히 머리를 굴리는 영화가 아니라,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현실을 의심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꿈 안에 꿈, 그 안에 또 꿈을 설계하고 침투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압도적입니다.꿈의 구조를 이해해야 영화가 보인다인셉션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 대부분이 초반부에 나오는 꿈의 다층 구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첫 번째 관람 때는 1단계, 2단계, 3단계 꿈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장면의 흐름만 따라갔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로 다시 보니 그제야 구조가 눈에 들어왔고..
일이 잔뜩 쌓인 월요일 오후, 상급자 보고 자료를 정리하다가 문득 "나는 지금 자발적으로 이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친 적이 있습니다. 업무 특성상 정산 마감과 보고 사이클이 촘촘하게 돌아가는데, 그 굴레가 어느 순간 쇼생크의 높은 담벼락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날 저녁 다시 꺼내 본 영화가 바로 쇼생크 탈출이었습니다.개봉 당시 흥행 부진과 뒤늦은 재평가당시 극장가는 쟁쟁한 경쟁작들로 가득했고, 쇼생크 탈출은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을 겨우 회수하는 손익분기점(BEP, Break-Even Point)조차 위협받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했습니다. 당시 극장가에는 포레스트 검프와 펄프 픽션이라는 괴물 같은 작품들이 동시에 걸려 있었고, 쇼생크 탈출은 그 틈에서 좀처럼 관객을 모으지 못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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